'악법도 법이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지켜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에게는 '독약도 약이다.' 그러므로 독약도 먹어야 한다는 주장과 뭐가 다른지 물어보고 싶다. 법은 공평해야 하며, 소수보다 다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다수의결의 원칙이 지켜질 수 있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기관의 권위도 바로 설 수 있다. 그렇지 못할 때는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 헌법에 나타나는 3·1, 4·19, 5·18, 6·10의 정신은 그래서 계승되어야 하는 가치이며, 5·16과 12·12는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할 가치다. 그 가치는 7·17 제헌정신, 8·15 광복절의 역사적 의미로 교육되어지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실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얻고자 함에 있다. 그래야 미래를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즈음 많은 분들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우선 민주주의는 가치를 담고 있으며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를 구성하고 있다. 가치는 무엇인가? 자유와 평등이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평등이다. 개인을 우선시하냐, 공동체를 우선시하냐에 따라 우리는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기도 한다. 개인을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공동체를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가 그렇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개인과 공동체를 구분하기도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하다. 공동체의 정의와 복지를 위해 국가는 개인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 교육과 국방 그리고 조세납부의 의무가 있으며,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권리가 있다. 즉 나의 의무가 신성하도록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위해 법과 권력으로 보호 또는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는 것이다.

그런 국가가 국민들을 억압하거나 사생활을 폭로한다면 국민은 등을 돌릴 것이다. 국민을 이긴 독재는 없다. 우리가 역사로부터 얻는 가장 큰 교훈이자 가르침이다. 약이 독약으로 판정되고 법이 악법으로 규정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지킬 의무가 없다. 오히려 지키는 사람이 어리석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방은 보수냐 진보냐의 가치 내용이라기보다는 원칙과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자 호소다. 성장이냐 복지냐. 그런 정책을 위해서 감세냐 증세냐. 북한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 등의 문제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정책을 둘러싸고 발생되는 계급·계층·이해집단의 관계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언론방송미디어, 집회시위결사,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정신이자 영혼의 문제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 사회가 건강하다는 징표이지만 인간의 기본권은 가치를 넘어선 실존의 문제다. 그것을 불평하거나 불편하게 여기면 그 사람은 독재나 파시즘을 좋아하는 것이다. 독재와 파시즘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공동의 적이다. 독재와 파시즘은 여러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권력을 이용하여 억압한다. 국세청과 감사원을 동원하여 가계부와 기업 장부를 뒤지고 공공기관을 감시하며, 국정원을 이용하여 메일이나 휴대폰, 인간관계를 사찰한다. 경찰을 동원하여 반대의 목소리를 막고 검찰을 동원하여 반대자를 구속시킨다. 언론이나 방송은 연예인 소식이나 오락 프로그램, 스포츠, 폭력 영화 등이나 틀어대면서 여론을 왜곡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주입시킨다. 정녕 이런 사회를 원하는가. 이런 일을 하는 국가를 바라는가.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 한다. 문화의 힘은 다양성과 상상력에서 나온다. 진정한 국가경쟁력은 개인의 자유를 허용하고, 공동체의 평등을 지향하는 가운데에서 정의가 바로 서고, 국가의 기강이 확립되는 것이다. 힘과 돈으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할 때 반드시 저항이 뒤따르고 사회는 불안해진다. 그 저항과 불안함을 다시 공권력을 동원하여 다스리고자 하면,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순해진다. 권력이 국민들에게 외통수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합법성과 합리성은 무한한 것이 아니다. 권력이란 국민들의 동의와 지지를 받는 범위 안에서의 제한된 권리이자 자유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공무원으로 하여금 이루게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그 공무원을 대표하고 국민에게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불량식품은 유통기한이 있다 하더라도 먹어서는 안 되듯이, 불량정권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끌어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하라고 뽑은 것도 국민이요, 잘못하면 심판하는 것도 국민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가 배운 역사관이다. 국민을 무서워하라! 국민을 두려워하라! 역사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