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초겨울 이야기이다. 날씨 좋은 어느 날 오후 나는 여느 때와 같이 풍물시장을 지나 원주천 작은 구름다리를 건너 봉산뫼를 오르러 길을 떠났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봉평교 못미쳐 길가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베지밀 하나를 사 마시며 주인 아주머니에게 "요새도 옆 공원에 노숙인들이 많이 와서 힘드시죠" 라고 물으니 아주머니는 공원이 바뀌어서 괜찮다고 한다. 

나는 베지밀을 다 마시고 나가보았는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원 한 가운데 있던 정자도 없어지고, 이곳의 이용자들이 나무를 넣고 불 피우던 드럼통도 없어지고, 새로 심은 철쭉꽃 나무들로 공원 전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는 잠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 전 부터 이 자리에 있던 정감어린 공원과 이곳을 지키고 이용하고 있던 마을 어르신들도, 노숙인들도 볼 수 없었다. 나무로 꽉 채워지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없게 만들어진 공원 아닌 공원만이 그 자리에 들어와 있었다.

이곳은 봉산동 어르신들이 시내 볼일을 보거나 시장을 보거나 혹은 십시일반 급식소에서 식사를 하고 마을로 돌아오며 잠시 쉬며 정자에 앉아 담소도 나누고 놀이도 하며 하루를 보내던 곳인데, 노숙인들이 비도 피하고 나무를 때며 추위와 싸우고 정자에서 잠도 자고 이들에겐 중요한 생활공간이었는데, 그리고 옆 철길 언덕에는 소변기도 있었는데 모든 것이 없어졌다. 정자도 사람도 모두 없어진 것이다.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리고 온기가 있는 살아있는 마을의 작은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한 순간에 죽은 공간으로 바뀌어버렸다. 지역 주민들의 휴식공간이며 집 없는 이웃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생활공간을 그렇게 빼앗고 바꾸어놓은 것이다.

일주일에 몇 번씩 봉산뫼를 오르러 이곳을 지나다니며 할아버지들 그리고 노숙인들과 인사도 하고 얘기를 나누고 하였는데, 이젠 그분들을 뵐 수가 없어졌다. 그곳에서 쉬고 하루를 보내던 우리 할아버지들과 노숙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모두들 이 사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소외되어 외롭고 갈 곳 없는 분들인데 어디서 하루를 쉬며 곧 다가올 추운 겨울을 어디서 지내고 있단 말인가. 너무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물론 노숙인들이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거주하여 미관상의 문제와 주민들에게 많은 불편과 피해를 주어서, 여러 번 다른 곳으로 갈 것을 권유했겠지만 듣지 않아 마지막 고육책으로 아예 정자도 없애고 공원의 기능을 폐지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이곳에 의지하고 이곳을 이용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대책을 세워놓고 공원기능을 없앴는지 궁금하다. 꼭 그렇게 쫓아내야만 했는지. 주민과 노숙인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지. 담당 공무원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고민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무료급식소인 십시일반과 노숙인센터를 운영하면서 왜 노숙인들에게 밥을 주고 재워주느냐는 비판적인 말을 간혹 듣는다. 우리도 언제든지 개인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요인에 의해 빈곤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이들도 어엿한 대한국민의 한 사람이고 우리의 이웃이다. 지역주민들의 따뜻한 이해와 말 한마디가 이들에겐 희망과 용기가 될 수 있다.

노숙인을 사회에서 범죄자나 사회의 악으로 생각하여 사회에서 격리시켜야만 하는 존재로만 보고 사회와 벽을 쌓는다면 그들은 사회에서 소외되어 점점 빈곤의 늪에 빠지고 악순환 되어 정상사회인으로 회복되는 길은 점점 멀어진다.

그들을 단지 지금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의 이웃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며, 또한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봉산동 공원에 갑자기 심은 꽃나무들이 오늘은 왠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