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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일상화 - 김명숙(상지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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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일상화
‘80대 노인으로서 나는 느티나무 길을 한가롭게 거닐고 있을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상념에 젖어 얼굴엔 미소를 짓고.때론 그러한 일상이 권태롭긴 하겠지만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하지도 않은 채 나는 노인의 하오를 보낼 것이다….’ 그대로 옮기진 못했지만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트러스트」라는 책으로 전세계에 이름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책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들이다. 이데올로기 경쟁이 끝난 후 21세기 미래의 자신을 그려본 이야기이다. 젊은이들의 정열도 격정도 부러울 것 없는 어느 선진국 노인의 일상적 삶에 대한 상상이다.
20세기는 전쟁과 이데올로기 경쟁으로 점철된 시대였고 그 와중에서 선진국이나 제 3세계 할 것 없이 모두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었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니, 정보의 시대니 하여 또 다른 경쟁을 예고하고 있긴 하지만 20세기와 같은 적대와 반목의 시대는 분명 아닐거라고 사람들은 예측해왔다. 특히 한국의 경우 19, 20세기는 그 거대 소용돌이의 눈으로 고래 싸움에 말려든 새우의 치명적인 경험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이제 희망의 새천년 21세기를 맞아 우리는 국민 모두가 정치인이었던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 편안한 일상 속에서 보다 작아진 정치, 다시 말해서 아주 작고 사소한 일상적인 문제들이 지방 자치라는 공간 속에서 해결되면서 일상의 나날을 보내길 희망해왔다. 그만큼 우리를 둘러싸고 벌어져 왔던 문제들은 크고 중심적이며 학연, 지연, 혈연등의 끄나풀을 통해 우리를 옭아매왔던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 우리는 일상의 정치(micro-politics)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정치의 일상화를 겪고 있다. 그것은 이제 중앙 정치인들의 정치놀음 수준을 넘어서서 그 위험 수위가 전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까지 하는 치명적인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다원적 민주주의란 사회 각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서로 이익이 상충될 때 서로서로 협상하고 그래도 안되면 국가가 조정에 나서고 하면서 극한 충돌을 피하고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는 좀처럼 모두를 만족시키는 조건을 형성하기 힘들다. 특히 역대 권위주의 정부의 조합주의적 통제에 길들여져 왔던 한국의 이익집단들은 정부를 신뢰하려 들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정치권에 일차적 책임이 있겠지만 집단 서로서로가 타협하고 양보하는 전통을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켜 국민들의 민주화의 대장정을 엉뚱하게 되돌릴 수도 있다. 국민들 편에서도 정부와 각 집단의 이해에 귀 기울여주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고독한 군중」의 저자 리즈만은 현대 사회에서 특히 의사와 같은 전문가 집단들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고 했는데 그 정치적 무관심 계층이 이제 이만큼 정치적이 되었다는 것은 아직도 한국에서 정치가 가공할만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벗어나기 힘든 정치의 일상화 현상을 일상의 정치화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있다.
국민 모두가 어떤 것이었든지간에 자신과 관련된 연줄을 벗어나 생각해보려는 노력과 함께 정부든 의료계였든 어떤 집단에 대한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고정관념을 떨쳐버리고 핵심적인 문제의 본질만을 보는 것이다. 권태롭더라도 평온한 일상의 나날을 보내는 것이 모든 국민의 바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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