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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됨의 역할 배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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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별/ 기/고/
용 정 순 (원동)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비슷한 내 또래의 사람들은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두었는데 나는 이제 초등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면서도 매사가 서툴다.
이제껏 아이들은 맘껏 놀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여 연필잡는 법 조차 제대로 가르쳐본 적이 없었는데 입학하고 4월경이면 받아쓰기를 한다고 하니 이제라도 글자를 가르쳐야 하는 건 아닌가 불안해지니 말이다. 또 웬만한 두자리 덧셈을 척척해내는 조카아이를 보면서 학교가서 ‘나는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만드는 건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교육 문제와 관련하여 소신을 지키고 사는 것이, 정치인이 자기 소신을 지키는 것 만큼이나 힘들다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우리 세대만 해도 대학 입학은 고등학교 2∼3학년 정도부터 준비해도 충분했지만 날이 갈수록 그 시기는 하루하루 빨라졌다.
“중학교 3학년 때가 적기”라는 얘기부터 “아니다, 내신이 중요하므로 중학교 1학년 부터는 시작해야 한다”, “아니다, 기초가 안되니까 중학교에 가서 하는 것도 늦더라” 급기야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아쓰기부터가 중요하다고 하고 뱃속에서 부터의 교육이 중요하다며 태교의 주요내용이 영어회화 테이프를 듣는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소위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아이 삶의 목표이고, 그런 아이를 만들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뛰어 다니며 아이들을 입시경쟁에 몰아넣고 있는 상황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웃을 생각하지 못하거나, 거칠고 폭력적인 아이들을 보거나, 비행청소년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교육’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제껏 ‘교육’이 “어떻게 하면 공부 잘하는 아이를 키우는 것인가”가 전부인 것처럼 몰아가다가 갑자기 ‘교육’이 어떻게 사람답게 살것인가, 바르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음을 탓하는 이율배반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학벌이 중시되는 사회이고, 학연, 혈연, 지연이 판치는 세상에서 부모가 든든한 빽(?)이 되어주거나 잘 나가는 친인척 두지 못한 평범한 부모들인 우리들로선 그저 제 밥벌이라도 할 수 있는 자식으로 키우자니 그저 어떡게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이들을 몰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진정 자식에 대한 애정 때문인가, 자식을 통한 대리만족의 욕구인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아이를 통해 얻으려 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아이를 위한답시고 아이의 모든 일을 사사건건 참견하고, 대신 결정하고, 앞장서서 해결하여 오히려 아이의 가능성과 자생력을 짓밟아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매사에 일이 안풀리거나 잘못될 때마다 ‘엄마탓, 부모탓’을 외치게 될까봐 걱정스럽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의 의미를 보통의 여성들은 자기 인생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 왔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기 자신도 키워 나가야 했는데, 우리는 자신을 철저하게 소진시켜야만 아이가 큰다고 믿어 왔다. 그러지 않는 여성은 이기적인 엄마라고, 모성이 결여된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학업성적이 좀 뒤떨어진 자녀를 둔 부모는 낙제부모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에 어느 학교가 갔어요?”라는 평범한 물음이 우리 지역에서는, 특정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부모들에게는 그 어느 무기보다도 강력한 비수가 된다는 사실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모쪼록 바란다. 이제껏 사소한 것이나마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힘을 키워 주기 위해 노력한 우리 아이가, 숫자공부· 글자공부는 좀 못해도 친구나 동생들과 어울려 자연 속에서 함께 뛰어 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일러온 우리 아이가, 공부 잘하는 친구도 있고, 공부는 못해도 만들기를 잘하는 친구가 있고, 누구나 하나씩은 잘 하는 걸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우리 아이가 암기위주, 경쟁위주의 공교육 틀 속에서 상처받고, 자신의 것을 포기하며 살게 되지 않기를. 서열위주의 입시 제도 탓에 중학교,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경쟁에 자신의 삶을 소모하지 않는, 인생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 버리지 않는 그런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런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최소한의 제도, 고교평준화를 이루어주는 것이 이제 나의 부모됨의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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