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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계절
2004년 11월 01일 (월) .
허은재 (보건교사 횡성여자고등학교)

햇살이 머무는 곳마다 열매를 맺어 기쁨으로 노래하는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다. 학교 축제를 앞두고 침묵하던 교정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살아나고 있다. 지난 삼년 열심히 공부했는데 수능의 열매는 얼마나 따게 될지 걱정이라며 온 몸이 쑤시고 머리가 아프다던 아이들의 얼굴도 오랫만에 가을하늘처럼 환하다. 교정의 노오란 은행잎이 한 줄기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자 반별로 합창 연습을 하던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환호성이 모여 노래가 된다.

“떡갈나무 숲에서 졸 졸 졸 흐르는~”

뒷동산의 떡갈나무도 돌아갈 채비를 하는지 잎새를 떨구며 마지막 남은 가을햇살에 춤을 춘다.
일년에 단 하루 축제를 위해 점심시간을 쪼개어 목소리를 다듬고, 토요일마다 저녁노을이 질 때까지 마음을 모으고 호흡을 조절하며 한 목소리를 만들어가던 아이들이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어깨를 쳐 주고 싶다. 연습하는 도중에 지쳐 그만두겠다고 투정부리던 아이들도, 학생 옷차림이 그게 뭐냐며 꾸중을 듣던 아이들도 오늘은 옷차림이 단정하고 진지하다.

휴식시간마다 지휘자의 지휘봉과 표정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저 아이들은 정말 안돼는 녀석들이야. 이 담에 커서 뭐가 되려는지…’ 하고 포기하려 했던 것이 부끄럽다.

교복이란 울타리 속에 꼬옥꼭 가두어두었던 끼들이 팝콘처럼 튀어 올라 산소 같은 시원한 웃음을 불러오고, 배우지 않았어도 어깨춤을 들썩이며 장단을 맞추게 하는 힘은 때 묻지 않은 맑음과 밝음 때문이리라. 입시와 취업을 앞두고 있는 아이들의 고민은 수능과 졸업이 가까워 올수록 심화되어 학교에서 열리는 축제조차 귀 막고, 눈 감아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1,2학년 때 동아리 활동과 축제에 젊음을 만끽하고 3학년 때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험만이 나의 존재를 대신할 뿐!’이라며 후배들에게 일갈하던 3학년 진이는 요즘 서리 맞은 아이처럼 풀이 죽어 있다. 자신은 인문계고등학교 학생이라는 신분에 묶여 동아리 활동과 축제에 한 번도 참가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공부한 만큼 성적도 오르지 않아 걱정인데 설상가상으로 “엄마 친구 딸은 수시에 합격하여 여유를 누리는데 너는 어떻게 할래?” 라며 비교 당하니 3년의 시간이 허망하게 느껴지지 않으랴.  

가을햇살이 참 곱다. 튼실한 햇살 아래 우리의 아이들이 진정으로 기쁨으로 학교에 오고, 즐거움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주고 싶다. 농부가 알곡을 얻기 위해 봄부터 수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거름과 비료를 주고, 김을 매는 작업을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일년 농사가 아닌 수 십 년을 바라보는 혜안과 인내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미래를 믿고 현재를 볼 수 있기 위해서는 혜안 뿐 아니라 용기 또한 필요하리라. 아이들의 미래가 곧 교사들의 희망인 것이다.

“얘들아, 너희들의 현재와 미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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