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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보린 주세요
2004년 09월 30일 (목) . .
허은재(횡성여고 보건교사)

백선생님의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건드리기만 하면 금새 풀썩하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 것인지, 출근은 어떻게 하셨는지, 병원은 다녀오셨는지, 식사는 어떻게 하셨는지 여쭈어보는 것이 죄송스러울 정도였다.
교통사고였다. 평소에 속쓰림이 있어 약을 먹는데 사고 전날 밤엔 유난히 심한 통증으로 잠을 이룰 수 없어 진통제 2알과 신경안정제를 드시고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가 겨우 일어나 출근을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아주 순간적으로 졸음이 쏟아져 깜빡하는 사이에 신호를 받고 서 있는 자동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킨 것이었다.

“선생님, 신경안정제 드시면 졸음이 쏟아져 운전하시면 안된다고 말씀하시더니 잊으셨던 거예요?”
“잊긴 왜 잊었겠어요. 새벽녘에 약을 먹었으니 출근할 때는 괜찮겠지 했지요.”
“병원에는 다녀오셨어요?”
“피해자는 병원엘 갔는데 가해자라 미안하고 죄송해서 떳떳하게 병원에도 못 갔어요.”
다행히 신호를 보고 속도를 줄인 상태라 외상은 없어 보였지만 많이 놀라 안정을 취하고 병원을 다녀오셔야만 했다.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약물 오남용을 줄이고, 바른 약물 사용법을 위해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사의 조제에 의한 약품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증상이 나타나면 광고에서 듣거나 입소문을 통한 약품이 자신에게도 맞는 약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건실에서 만나는 문제가 바로 이 문제이기도 하다.

“게보린 세 알 주세요.”
“어디가 아픈데? 언제부터 아팠지? 밥은 먹었니? 전에도 똑같이 아픈 적이 있니?”
“그냥, 게보린이나 주세요. 친구가 먹었는데 직방이래요.”
자신의 증상이 ‘지금 이렇습니다’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약품의 상품명을 요구한다. 증상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사고, 약사의 설명에 따라 식사 전에 먹는 약인지, 후에 먹는 약인지 알아야한다고 짧은 시간에 속사포처럼 교육을 한다.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말하고 싶다. 행복하기 위한 조건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건강해야하지 않을까. 건강하려면 어떤 상태가 건강이고 어떠한 상태가 건강한 상태가 아닌지를 알아야만 한다.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보건교육은 지금 현재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을지라도 학생들의 건강한 미래를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실은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많은 건강문제를 안고 찾는 곳이다.
얼굴을 찌푸리고, 통증을 호소하며 보건실을 찾는 학생들이 “게보린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고, 정규적인 보건교육을 통하여 자신의 건강문제와 그에 대한 올바른 해결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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