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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물로 보는 거야?”
2004년 08월 23일 (월) .
허은재 (횡성여고 보건교사)

바람이 선선하다. 십년 만의 무더위는 가전제품 코너의 시원한 에어컨과 빈지갑을 저울질하게 하고, 열대야는 짧은 여름밤의 잠도 빼앗으며 기승을 부리더니 입추와 말복이 지나고 나니 바람 속에 가을이 묻어난다. 아침저녁으로 선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또 시간을 보냈구나하는 자책과 함께 다시 만날 아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설렘과 기대를 안고 방학하던 날 두 손가락에 브이자를 만들며 좋은 조건의 알바를 구했다고 자랑하던 진주가 떠오른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와 언니가 일을 하지만 수입이 적어 여름방학에는 학비를 보태야한다며 걱정하더니 알바를 구해 개학하면 선생님에게도 한 방 쏠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진주에게 축하한다고 등을 두드려주면서 지난 2월의 일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개학을 하고 서류와 약품을 정리하고 있는데 보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노크도 없이 들어선 우람한 체격의 재현이었다. 인기척도 없이 보건실에 들어왔다고 일장 훈계를 늘어놓을 준비가 된 나에게 넉살 좋은 이 녀석은 “아, 엄니, 안녕하셨어요?” 하며 너스레를 떨어 반가운 마음에 손을 잡았더니 아프다고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었다. 두 손은 동상이 생긴 것처럼 부어올랐고, 엄지와 검지 손톱 밑이 벌어지고 갈라져 대충 붙여둔 일회용밴드는 때가 까맣게 묻어있었다. 소독을 하고 드레싱을 하며 이 겨울에 무엇을 했기에 두 손이 이 모양이 되었느냐고 했더니, 언제나 든든한 모습만 보여주던 녀석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어른들은 우리를 물로 보는 거예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방학을 맞아 중국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오전10시부터 오후9시까지 일당 이만오천 원을 받기로 약속하고 한 달을 일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받아든 월급봉투가 생각보다 얇더라는 것이었다. 이의를 제기했더니 눈이 와 미끄러져 음식물 쏟아 배달 못한 것 공제하고, 오토바이 수선비와 맘씨 좋은 얼굴로 사다 붙여준 파스와 병원비도 책임져야 하고, 못하는 일을 가르쳤으니 오히려 실습비를 받아야 한다며 윽박지르더라는 것이었다.  

매운 겨울바람과 싸우며 배달과 가게 청소, 시간 나는 대로 설거지와 잔심부름을 하며 어렵게 한 달을 버텨냈을 녀석이 안쓰럽고, 대견하고, 또 한편 속이 상해 어느 식당이냐고 물었더니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재량활동 시간을 통해 청소년보호법과 최저임금법령, 청소년 아르바이트의 임금 피해 사례와 대응방법, 청소년 아르바이트에서 겪는 성피해 사례를 설명해 주었지만 어른들의 이기심 앞에 무력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개학이다. 진주의 환한 웃음과 잠시의 알바일지라도 일을 통해 노동의 신선함과 돈의 가치를 깨닫는 방학을 맞이한 우리의 아이들을 만나는 즐거운 개학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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