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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아이(학생의 날 행사를 준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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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봉(북원여자중학교 교사)
우리 학생들이 조선시대를 살았다면 크게 보아 소수는 지주의 자식이었을 것이고 다수는 소작인의 자식이었을 것이다.
농업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으로 구별되어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 태어나는 사람은 크게 보아 사용자의 자식 아니면 근로자의 자식으로 태어난다.
이것이 바로 자본과 노동의 커다란 구분이며 이러한 인류사회 변화의 원인을 우리는 ‘산업혁명’ 또는 ‘제2의 물결’이라 부른다. 포크레인 없이 장사지내는 일은 이제 너무 힘든 일이 되고 있다. 상여꾼과 회다지꾼을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간 삶의 양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본질적인 이유는 과학과 기술의 변화 발전이겠지만 좀 더 쉽게 말하면 사람들의 먹고 사는 방식의 변화 때문이다.
농업경제시대에는 농업 생산에 최적의 삶의 방식이 발달했다면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사회에는 공업적 생산에 가장 적당한 삶의 방식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족도 핵가족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농업경제 시대에는 농사라는 것이 책에 적어놓고 짓는 것이 아니어서 노인일수록 경험이 많고 농사 기술이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젊은 농사꾼은 노인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러나 인간은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 존재로 변화가 빠른 현대 사회에서 노인은 젊은 세대에게 뒤질 수밖에 없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을 기반으로 변화하는 세상이 이렇게 세대의 역할을 바꾸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는 아직도 어른과 노인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경로사상을 강조하는 대부분의 교과서 내용이나 학교의 충효교육의 흐름은 모두 농업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과거의 가치이다.
그런 낡은 가치들은 학생들에게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과거사회에 기반한 전통적 가치의 강조는 아이들을 호달구기만 할 뿐 교육적 효과는 별로 없다. 어쩌면 아이들은 어른들 앞에서는 어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행동하고 자신들끼리 모였을 때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매년 교사들이 가장 우울한 한 날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일제 조회 행사를 하면서 가슴에 꽃을 달아주기 위해 달려오는 학생을 보면서, 자잘한 선물들이 책상 위에 쌓이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들은 우울하다.
왜냐하면 세상에 대해서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은 교사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가 가장 모범적인 인생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는 일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학생들의 부모와 별다름 없는 한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매년 스승의 날 행사는 반복된다. 맘 편하게 선생노릇 똑바로 하라는 의미이겠거니 하면서 자위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우울한 마음을 내내 가시지 않는다. 그러면서 늘 드는 생각이 있다.
선생님이 존중되는 것처럼 학생도 존중되는 학교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스승의 날에 드는 이러한 교사들의 불편함을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교사들은 학생의 날 행사를 그럴싸하게 치러주어야 할 것이다.
학생의 날을 왜 만들었을까? 학생의 날은 적어도 불의에 맞장을 떴던 선배 학생들을 기리고 따라 배우라고 제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학생의 날은 왜 사라졌을까? 정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때문에 형식적인 날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학교가 진정으로 학생을 위하고 우리의 사회가 변화된 사회에 조화된 삶의 양식 즉 민주적인 삶의 양식으로 채워지려면 학생의 날은 부활되어야 한다.
전교조 원주횡성중등지회 선생님들은 학교 밖에서 ‘제74돌 학생의 날 기념식 및 2003 원주 청소년 축제’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학생의 날 기념행사가 학교마다 실시된다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교사단상을 통해 너무 많은 얘기를 꺼내다 말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이제 우리사회를 주도해야 할 가치는 농업경제에 기반한 봉건적 가치가 아니라 인본주의에 기반한 민주적인 가치라고 느끼고 추구하는 교사의 한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노인과 아이의 구분은 차별이 아니라 차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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