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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르게네프의 거지
2002년 10월 24일 (목)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시인 이 영 춘 (원주여자고등학교 교장)

·원주여고 졸업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6년 제19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

·제3회 윤동주 문학상

·제29회 강원도 문화상(문학부문 1987)

·제10회 경희 문학상(1993)수상

·제6회 춘천 시민상(1999)문화 예술부문수상

·시집 《종점에서》, 《시지포스의 돌》, 《귀 하
나만 열어놓고》, 《네 살던날의 흔적》, 《점하
나로 남기고 싶다》, 《그대에게로 가는 편지》,
《난 자꾸 눈물이 난다》, 현대시 CD-ROM
시집《슬픈 도시락》

·수필집 《그래도 사랑이여》 상재

·현 한림산업정보대학 출강









러시아의 대 문호 뚜르게네프의 시에 ‘거지’란 산문시가 있다. 이 가을에 그리고 이 시대에 한번쯤 음미해 볼만하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한 신사가 길을 걷고 있었다.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걷고 있는데 난데없이 거지가 길을 가로막고 선다. 나리님! 한푼 적선합쇼. 그 신사는 엉겹결에 아, 예 알았습니다. 드리지요. 암 드리고 말고요. 대답을 해놓고 신사는 돈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갑을 찾았다. 그러나 지갑은 없었다. 신사는 지갑을 안 갖고 나온 것이다.


잔돈이라도 있으려니 하고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모조리 찾아도 돈이 없었다. 너무 당황한 신사는 순간 그 거지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시다시피 돈이 있는 줄 알고 드리려고 했는데 불행하게도 한푼도 없네요. 어떻게 하지요?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거지의 말이 걸작이었다. 아, 아닙니다.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오늘 저는 천만금의 적선을 받은 것보다도 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당신의 마음을 받았으니까요.”
이만하면 거지도 신사도 수준급이다. 나도 어쩌다 서울에 갈 때면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불쌍한 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진정한 마음의 적선을 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다소 측은지심이 동했을 때 겨우 동전 몇 닢, 아니면 천원짜리 한장 던져주면 그것으로 족했다. 이승에서 보시를 많이 하면 그만큼 은덕을 받는다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는 것이 고작일 때도 있다.


진정 따뜻한 마음을 주기는 고사하고 은덕을 많이 받기 위해 행해지는 내 행동이라면 이것 역시 보시가 아니라 인과응보의 대가를 바라는 모순인 것 같아 부끄럽다.
어느새 한해의 끝자락에서 곱게 옷을 갈아입은 단풍들이 겨울의 문턱에서 파르르 떨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 속에서 겨울을 나야하는 우리 강원도 영동지방 수재민들이 큰 걱정이다.


엎친 데 겹친 격이라고 또 하루 비 피해를 당했다고 하니 정말 대관령 산신령이 노했단 말인가? 이런 의구심마저 드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본성때문이라고 일축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다.
파르르 떠는 잎새 하나에도 가슴이 시려오는 계절인데, 우리 이웃들의 이 아픔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어찌된 일인지 그렇게 많이 모아지는 것 같이 보도되는 성금도 추석때 겨우 제사상 차리라고 10만원 주고는 아직 보상은 한푼도 못 받았다고 하소연하는 어떤 주민의 일그러진 얼굴이 오늘 따라 더 안타깝게 떠오른다.


뚜르게네프의 시적 풍유 이상으로 진정 따뜻한 마음을 전해야 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못하는 마음이 그저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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