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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전상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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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박 광 필
·원주출생(1956년생)
·대성고, 청주교육대학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
·원주 「지금, 여기서부터」전 출품및 운영위원
·속초 강원국제관광엑스포 야외조각전 출품및
운영위원
·치악예술관 개관 초대전
·강원 감영 500년 기념 조형물 제작
·민긍호 의병장 기념상, 지용주 선수기념상 제작
지난 여름, 유래없던 집중호우로 인한 혹독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추석을 막 지난 가을 들판의 황금빛 출렁거림이 농부의 아픈 마음을 다소나마 위로해 주는 것 같아 다행으로 느껴집니다.
뒷산 밤나무 아래에선 바쁠 일 없는 다람쥐가 신이 나서 숨바꼭질하고, 휘영청 밝은 달 아래 귀뚜라미는 처절하게 계절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보고 싶은 선생님!
선생님 곁을 떠난지도 벌써 30년이 훌쩍 지나, 어느덧 저희도 인생의 가을 문턱에 와 있습니다. 얼떨결에 떠밀리듯 살다보니 내세울 것 변변찮아 송구스럽기도 하지만, 정말 안타깝고 애석한 일은 선생님의 인자하신 모습을 이제는 다시 뵐 수 없고, 애정 어린 덕담을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치악산 삼봉 아래에서 보낸 6년의 유년 시절이 절로 생각납니다. 봄부터 겨울까지의 사계절을 누구보다도 가깝게 피부로 겪으며 보낸 유년 시절의 소중한 추억은 제 삶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고귀한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산을 넘고 내를 건너야 하는 5리가 넘는 학교길은 그 자체가 자연학습이요 놀이였으며 꽤나 밀도 있는 체력단련의 장이었습니다. 봄이면 교정의 뜨락에 줄지어 선 아름드리 벗나무에서 뿜어내던 꽃내음, 벌들의 잉잉대던 소리, 그 꽃 그늘 아래에서 구호식품으로 나누어주던 옥수수빵을 들고 뛰놀던 어린 시절의 재잘거림, 이 산 저 산으로 진달래 꽃잎을 따먹으며 해 지는 줄 모르던 하교길의 전쟁놀이, 그러면서도 무섭기만 하던 보리문둥이 이야기, 미루나무 늘어선 흙먼지 가득한 신작로를 터벅터벅 걷다가 운 좋게 얻어 탄 군용트럭에서의 즐거움, 어차피 농사일을 거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어지는 이삼일간의 농번기 방학, 그 일상의 탈출이 주는 즐거움은 또 하나의 기쁨이었습니다.
지금은 보기 힘든 개암나무 열매나 풋밤을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따 가지고 온 산을 쏘다니다 보면 어느새 추석은 다가오고, 그 풍성함에 때맞춰 만국기를 펄럭이며 장엄하게(?) 펼쳐지던 가을 운동회의 설레임, 무릎이 까져가며 한달 넘게 준비한 곤봉체조, 덤블링, 기마전, 그리고 청백계주와 마을대항 릴레이, 목이 터져라 외쳐대던 응원의 함성을 뒤로 하고 부상으로 받은 몇 권의 공책과 연필을 쥐고 귀가하는 길에서 아쉬움 반 즐거움 반으로 내리던 축제에 대한 평가, 이렇게 한바탕 잔치를 치르고 나면 하교 길은 들꽃과 함께 울긋불긋. 이렇게 유년의 가을은 깊어 갔습니다.
보고 싶은 선생님!
치악산 삼봉에 눈이 세 번 내려야 마을에 눈이 내린다고 하며 화제의 초점은 자연스레 첫눈이 되고 교실엔 난로가 놓이고 솔방울이랑 솔가지들을 따서 불쏘시개를 준비하며 우리의 놀이는 어느새 새총 만들기, 구슬치기, 딱지치기로 옮겨갔고 얼음지치기, 썰매타기로 나뒹굴며 놀다가 언제나 맨 마지막에는 불장난. 언 손발을 녹이려다 나일론 양말을 다 태워도 마냥 즐거웠습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쓰러지고 넘어지며 가는 학교 길은 북극 탐험길 같았으며 온몸이 나른해져 난로 위에서 지글거리는 도시락만 생각하다 졸다보면 어느덧 하교길 하루해가 짧았습니다.
그리운 선생님!
그 시절 우리에게 치악산의 삼봉보다 높은 산은 없었고, 학교보다 더 큰 건물은 없었으며, 선생님보다 커다란 분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6년을 마음놓고 뛰놀며 자연과 더불어 성장한 유년의 기억들은 제 꿈을 실현시키는데 자양분이 되었으며 역경이 닥칠 때마다 의연히 저를 지킬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제는 뵐 수 없는 선생님이지만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잊혀지지 않듯이 선생님의 인자하신 모습 또한 영원히 제 가슴속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늦은 가을밤에 선생님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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