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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과 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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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 영 춘 (원주여자고등학교 교장)
·원주여고 졸업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6년 제19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
·제3회 윤동주 문학상
·제29회 강원도 문화상(문학부문 1987)
·제10회 경희 문학상(1993)수상
·제6회 춘천 시민상(1999)문화 예술부문수상
·시집 《종점에서》, 《시지포스의 돌》, 《귀 하
나만 열어놓고》, 《네 살던날의 흔적》, 《점하
나로 남기고 싶다》, 《그대에게로 가는 편지》,
《난 자꾸 눈물이 난다》, 현대시 CD-ROM
시집《슬픈 도시락》
·수필집 《그래도 사랑이여》 상재
·현 한림산업정보대학 출강
내 친지 중에는 보기 드물게 효행을 다하며 사는 분이 있다.
그는 90세가 넘은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그 어머니께 살아 있다는 의미를 부여해 드리기 위해 혹은 “나도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부여해 드리기 위해 매일 아침 그 어머니에게 소일거리를 마련해 드리고 출근을 한다.
그 소일거리란 흰 콩과 검은 콩을 한데 섞어서 그것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어머니 검은 콩이 흰 콩에 섞여 있어서 쓸 수가 없으니 이것 좀 골라 주세요”라고 한단다.
어디 그 뿐인가! 때로는 콩나물을 그것도 뿌리가 긴 콩나물을 한 소쿠리 구입하여 이것 좀 다듬어 놓으시라고 부탁하고 집을 나서곤 한단다.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아직도 콩을 고르시게 하느냐고 묻곤 한다.
오늘도 그를 만났다. 예의 그 일을 물었더니 요새는 무명실타래를 헝클어 놓고 그것을 풀어서 감아달라고 주문한단다.
또 한때는 학을 접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고 하루종일 그것을 접게도 해 드렸다고 하니 이렇게 지극 정성스런 효성이 또 어디 있을까? 굳이 명심보감이나 옛 성현들의 고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주위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격스럽다.
요새 며칠간 나는 거의 매일 울면서 나날을 보낸다.
80세 된 어머니가 편찮으시기 때문이다. 가까운 병원에 계실 때는 매일매일 뵐 수 있어서 그래도 마음이 덜 아팠는데 서울로 옮기고 나니 전화로만 그 음성을 듣는다.
어머니는 내가 전화를 할 때마다 전화를 받는 게 아니다. 수화기 저 편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온통 앓는 소리뿐이다.
더구나 “난 이제 못 살 것 같다. 이렇게 아파서 어떻게 살 수 있겠니? 약이라도 있으면 먹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을 하신다. 그 음성을 들을 때면 나는 가슴이 메어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자식은 죄인이라는 말을 절절히 실감한다. 어머니는 그렇게 아파서 잠을 못 이루시는데 나는 쿨쿨 잠을 잔다.
또한 어머니는 너무 아파서 잡수시지도 못하는데 나는 그저 배부르게 먹고 또 이런 저런 모임에 부지런히 쫓아다니고 있다.
모순! 모순! 인생은 그래서 모순이라 했던가?
어머니 몸의 한 부분을 물려받고 이 세상에 태어난 내가 이렇게 이율배반적일 수가 있을까를 생각하며 또 괴로워한다.
그래서 자식은 죄인이란 말이 더욱 아프게 뼛속을 파고 든다.
죄인의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어머니가 하루속히 쾌유되시는 길뿐인데…. 아, 나의 하늘은 오늘도 어둡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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