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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2002년 08월 29일 (목)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양 승 준 (시인·원주여자고등학교 교사)

·1956년 춘천 출생

·강원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2년 제5회 <시와 시학> 신인상 당선

·1998년 제1회 <열린 시조> 신인상 당선

·<북원문학상> 및 <원주예술상> 수상

·<시와 시학> 동인, <오늘의 시조학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 : <이웃은 차라리 없는 게 좋았다>,
<사랑, 내 그리운 최후>, <영혼의 서역>

·저서 : <한국 현대시 400선 - 이해와 감상> 1·2

·현 연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재학중

·현 원주여고 교사 및 상지영서대 언어예술과 강사



나치가 저지른 과거역사에 대한 독일 감독의 철저한 반성적 태도

부끄러움 모르는 일본인들이 배워야 할 소중한 교훈

선생님, 참으로 빠른 세월입니다. 어느덧 이슬이 내리고 가을 기운이 완연해진다는 백로(白露)가 가까워졌습니다.


아, 또다시 가을입니다.
선생님, 저는 지난 일요일, 아주 오랜만에 썩 괜찮은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비록 극장의 대형화면을 통해 감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처럼 맛본 황홀한 시간이었습니다.


영화보다 더 아름답고 유명한 ‘글루미 선데이’라는 주제곡이 영화의 무대인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가로지르는 다뉴브강의 푸른 물결처럼 영화 전편에 출렁대며 제 영혼을 붙잡은 ‘글루미 선데이’(감독 : 롤프 슈벨 / 출연 : 에리카 마로잔, 조아킴 크롤, 스테파노 디오니시, 벤 베커)라는 영화였습니다.


매력적인 한 여자와 개성이 강한 세 남자의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사랑이 제목만큼이나 ‘글루미’하게 전개되는 이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지난 여름 내내 잠들어 있던 감성들이 일제히 느낌표처럼 일어나 제 가슴을 두드렸다고나 할까요. 그랬기에 그 날은 ‘우울한 일요일’이 아니라 진정 ‘행복한 일요일’이 되었습니다. ‘동유럽의 파리’, ‘다뉴브의 진주’라 불리는 예술과 문화의 도시, 부다페스트의 전경이 화면 가득 들어차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자살의 찬가’라고도 불리는 ‘글루미 선데이’는 1935년 헝가리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실연을 당한 아픔을 형상화했다고 하는데, 레코드로 출시된지 8주만에 헝가리에서만 187명이, 특히 1936년 파리에서는, 세계적인 ‘레이 벤츄라 오케스트라 콘서트홀’에서 이 곡을 연주하던 단원 모두가 자살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뉴욕 타임즈」는 ‘수백명을 자살하게 한 노래’라는 헤드라인으로 특집기사를 실었고, ‘글루미 선데이 클럽’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으며, 이 곡에서 영감을 얻어 ‘피치 블랙-죽음의 화장품’까지 출시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창작한 영화였습니다. 노래가 만들어진 것이 1935년이지만,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그 사실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상황과 병행하여 이 노래는 비로소 사실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우울한 일요일’이란 그저 일요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일요일은 주초이기도 하고 주말이기도 합니다. 처음일 수도 끝일 수도 있기에 ‘연속’이라는 파생 의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울한 일요일’은 어느 특정 일요일 하루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연속되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가장 즐거워야 할 일요일이 우울하다는 것은 그 나머지 날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매력은 주제곡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노래를 듣던 한 노인의 죽음으로 출발하는 이야기구조는 사랑의 환희와 그 비극적 파국을 60년이라는 시간을 소급하면서 마지막 엔딩을 기막힌 반전으로 끝맺습니다.


절제된 언어와 탄력 있는 구성, 그리고 매력 넘치는 배우들과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의 풍광,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글루미 선데이’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선율이 저를 행복으로 물결치게 해주었습니다. 비록 “사랑 전부를 잃기보다는 사랑하는 이의 반쪽만을 얻겠다”며 한 여자를 공유하는 두 남자의 현명한(?) 사랑법이 우리 정서에는 그리 부합되지 않지만, 예술가의 자존심과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나치가 저지른 과거 역사에 대한 독일 감독의 철저한 반성적 태도야말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본인들이 배워야 할 소중한 교훈이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선생님, 이제 또 가을입니다. 올 가을에는 한층 더 깊고 정갈해진 사랑으로 생활의 텃밭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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