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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정지용
2002년 08월 17일 (토)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시인 오 탁 번

·서울 출생

·원주고 졸업

·고려대 영문과,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시)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소설)

·시집 『겨울강』, 『1미터의 사랑』등

·소설 『처형의 땅』, 『순은의 아침』등

·고려대 교수






2002년은 정지용 탄생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김소월도 같은 해 태생이고 보니 우리 현대시사에 빛나는 족적을 남긴 두 시인은 운명적으로 이란성 쌍둥이로 그 생애를 같이 했는지도 모른다.
두 시인 사이에 전기적 교류를 했다는 증거는 없으나 이들은 시사적으로는 끊임없는 교신을 주고 받았는지도 모른다. 지용은 심상으로 소월은 운율로 그들의 시를 형상화시키면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현대시사의 정상에 올랐던 것이다.


특히 정지용의 시사적 중요성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성을 띠고 우리들 앞에 우뚝 서 있다. 정지용은 아직 살아있다. 이는 그가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남과 북 그 어디에서도 흔적을 감추었다는 그의 마술적 리얼리즘과도 같은 전기적 생애가 주는 마력 때문이 아니다.


그의 시가 아직도 현재형으로 벌떡벌떡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지용시에는 아직도 완전히 독해되지 않은 채 그냥 지레짐작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지용시는 시대가 바뀌어도 늘 새롭게 읽히는 작품들이 많은지도 모른다.

시인의 조어(造語)나 방언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판과 교정의 오자와 탈자가 아직 현재형으로 방치돼 있는지도 모른다.


널리 알려진 「향수(鄕愁)」의 ‘해설피’나 ‘얼룩백이 황소’ 그리고 ‘서리 까마귀’ 같은 말은 아직도 학계나 평단에서 그 올바른 뜻이 완전히 공인된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얼룩백이 황소’는 황소가 얼룩백이일 수 없는 것이고 보면 이것은 우리나라의 토종소라고 할 수 있는 칡소를 말한 것 같고, ‘서리 까마귀’는 무리지어 나는 까마귀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렇게 되면 ‘초라한 지붕’ 아래 도란도란거리며 이야기하는 시속의 등장인물들과 조화되지 않는 어떤 불길하고 시끄러운 정황이 된다.


물론 「봄」이라는 시에 ‘외ㅅ가마귀’라는 말도 나온다. 또 상조(霜鳥)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서리병아리’(서리 내릴 무렵 깐 병아리)란 말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서리 까마귀’도 같은 문맥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리 내릴 무렵이면 새의 먹이가 되는 곤충도 없으니까 미처 덜 자란 어린 까마귀가 어미를 따라 날면서 보채며 우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람쥐 꼬리 / 숯이 짙다.’「비로봉」은 다람쥐의 꼬리인지 다람쥐꼬리라는 식물인지도 더 생각해야 한다.


지용시에는 ‘외로운 황홀한 심사’와 같은 모순적인 말도 빈번히 나오고 있어서 앞으로도 면밀한 독해를 거쳐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말은 시적 전망의 틀을 고정시키지 않고, 마치 망원경의 초점과 거리를 조절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같은 대상을 보지만 그것이 크게 보이기도 하고 또 작게 보이기도 하는 것과 같다. 지용의 시의식은 이처럼 역동적이다. 탈자와 오자의 예를 한두 개 들어보기로 한다.


「춘설(春雪)」에 나오는 ‘옴작 아니긔던 고기입’의 ‘아니긔던’은 ‘아니하던’의 오자이며, 「붉은 손」의 ‘검은 버선에 흰 볼을 받아 신고’는 ‘볼’이 해진 버선 바닥에 덧대어 깊는 헝겊 조각임을 생각할 때 ‘박아신고’가 더 맞는 말이다. 「꽃과 벗」의 ‘낙타털 케트에 / 구기인채 / 벗은 이내 나브ㅣ 같이 잠들고,’의 ‘케트’는 ‘키트’(kit-여행자의 옷이나 장비)의 오자인 것이다.


‘나의 얼골에 한나잘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더니라.’「백록담」에서 알 수 있듯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과 하늘을 치환하여 이루어내는 범신론적이며 우주적인 지용의 시의식은 우리가 평소에 깨닫지 못하는 것, 또 깨달으면 오히려 싱거워지는 원형적인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지용시의 이름짓기와 역동적인 시적 전망이 이루어내는 불가해한 집적은 그대로 우리 현대시사의 무이한 정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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