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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강을 하면서
2002년 07월 04일 (목)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사이버 시대에 사는 시인의 마지막 몸부림일지라도
옛 선비들이 지녔던 고집과 비타협의 정신을 고수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모두 사이버 나라로 이민을 가버렸는지, 시 쓰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스개나 가벼운 재치만 반짝이는 3행시 같은 말장난만 즐기고 누구한테 그리도 절박하게 전화를 거는지 휴대폰 하나씩 들고 캠퍼스를 횡행하고 있다. 사이버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신속한 정보전달이 현대인에게 필수불가결의 것이라고는 해도, 오랜 명상과 고뇌를 거쳐서 나오는 한 편의 시는 애당초 신속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시는 임산부의 자궁 속에서 열 달을 자라고 태어나는 아기와 같다.
그래서 진정한 시 정신은 현대의 천박한 신속성을 거부하는 데에서 그 존재의의를 구현해 내어야 한다.

물론 시적 상상력은 사이버 세계의 신속성을 수만배 능가하는 우주적 속도가 있다는 점도 꼭 알아야 한다. 나는 강의를 하면서 언제나 문학개론 첫 시간에나 할 법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한다.


나는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이번 학기 현대문학사 종강을 하면서 좀 특별난 종강파티를 하기로 했다.

현대판 책씻이라고 할 종강파티를 학교 앞 호프집에서도 할 때가 있지만 수강생이 100명을 웃돌 때는 마땅한 장소를 구할 수가 없다. 현대문학사는 4학년만 수강하게 한 과목으로 교수가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는 게 아니라, 조를 짜서 조별로 현대문학사상 특기할만한 흐름에 대하여 테마를 정하여 발표를 하는 강의인데, 종강시간에 학생들에게 각 조별로 떡과 과자 그리고 음료수를 준비해 오게 했다.

음료수에는 술도 포함된다고 일렀다. 마지막 시간 발표를 끝내고 강의실에서 약식으로 종강파티를 하게 된 것이었다.

종강시간에 학생들은 지시받은 대로 조별로 떡과 음료수를 준비해 왔다. 캔맥주와 백세주를 가져온 학생도 있었고 담당 교수의 입맛에 맞추어 위스키를 가져온 학생도 있었다.
발표를 일찍 마무리하고 학생들과 나는 떡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면서 한 학기 동안 못 다 나눈 이야기를 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위스키 두 잔을 마셨다.


현대문학사 시간은 학기초부터 학생들에게 명찰을 달게 한다.
한자로 학번과 출신고교 그리고 성명을 반드시 육필로 쓰게 한다. 컴퓨터로 글자를 찍으면 반듯반듯 알아보기는 쉬우나, 학생이 직접 쓴 글씨가 지니는 여러 가지의 뜻과는 어림도 없다. 우리의 한글과 동양의 한문은 정보전달의 매체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書體(서체)에서는 그 사람의 성격과 꿈의 이미지가 묻어난다.


학생들이 발표를 할 때 나는 학생들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면서 학생의 가슴에 붙어 있는 명찰을 유심히 살펴본다. 한자로 쓰게 하면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水原(수원)을 ‘水源’으로 잘못 쓴 학생에게 나는 “왜 우리를 저수지에 빠트렸느냐”고 수원시민들이 항의할지 모른다고 말해준다. 仁川(인천)을 ‘人天’이라고 써 붙인 학생도 있다.

原州(원주)를 ‘原住’로 쓴 학생에게는 원주시에는 모두 원주민만 사느냐고 반문한다. 이럴 때면 교실은 웃음바다가 된다.
대학 강의실에서 명찰을 달고 수업을 받는 풍경은 시대착오적인 면도 있겠으나 나는 누가 뭐라든 4학년 현대문학사 시간만은 내 방식대로 몇년째 운영하고 있다.
사이버 시대에 사는 시인의 마지막 몸부림일지는 모르나 옛 선비들이 지녔던 고집과 비타협의 정신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또 나는 강의평가니 업적평가니 하는 것들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강의를 평가받으면서까지 교수노릇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종강을 하면서 교실에서 학생들과 술을 마셨다? 그렇다! 나는 요란한 컬러시대와 괴물과도 같은 사이버 세계를 무시한 채 흑백시대의 한 장면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종강파티를 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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