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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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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승 준(시인·원주여자고등학교 교사)
7월 7일 ‘미리내 데이’에 농산물을 선물한다면…
사랑고백, 얼마나 순결하고 아름다운가가 중요
3월 14일 오늘이 ‘화이트데이’란다.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가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 꽃바구니를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면, ‘화이트데이’인 오늘은 남성이 여성에게 사탕 꽃바구니를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란다.
이런 날들이 정말 몇몇 장사꾼들에 의해 치밀하게 계산되어 만들어진 국적 불명의 이벤트성 행사인지는 몰라도, 사랑을 고백하는 날을 이렇게 특정 날로 정해 놓았다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다.
아무도 모르게 예쁘고 정성스레 키워온 혼자만의 사랑을 어느 날 불쑥 세상 밖으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쑥스럽고 부끄러운가.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하는 외국어로 명명한 것은 그렇지만, 그런 특정 날을 이용해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조금은 덜 쑥스럽고 덜 부끄러우리라. 그런데 왜 하필 ‘사랑 고백의 날’이 2월 14일이고 3월 14일이란 말인가? 차라리 ‘칠월칠석’(음력 7월 7일)을 우리 민족 고유의 ‘연인의 날’로 정하면 어떨까? 그리곤 그 날을 은하수의 순우리말인 ‘미리내’에다 ‘데이’를 붙여 ‘미리내데이’로 하면 어떨까? 그런 다음 ‘초콜릿‘이나 ‘사탕’ 대신 우리 농산물로 만든 선물을 주고받는다면 또 어떨까?
그러나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는 게 아닌 듯하다.
최근에는 주고받는 선물이 사랑 고백이라는 순수성과 진지성을 넘어 지나치게 크고 화려해지거나 고액이 됨으로써 결국 사랑 고백이라는 본질이 왜곡되거나 본말이 전도된 지경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마치 선물의 액수와 규모에 따라 사랑이 결정되는 것처럼 그 의미는 갈수록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화이트데이’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비해 왜 ‘발렌타인데이’는 문제가 되고 있을까? 우리나라와 같이 전통적으로 남성중심사회의 경우, 남성이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당연시하는 반면, 여성이 남성에게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그다지 ‘여성스럽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편견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애정 표현에 있어서도 남성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해야만 ‘남성다운’ 것으로 간주되고, 여성은 소극적이고 피동적이어야만 ‘여성스러운’것으로 간주되는 편견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편견 속에서 배태된 ‘발렌타인데이’야말로 여성들이 그간의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좀더 적극적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 어찌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일년 삼백 예순 날 모두가 사랑 고백의 날이요, 사랑 표현의 날이 아니겠는가.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랑의 고백과 표현이 얼마나 순결하고 아름답고 열정적인가에 있는 것이지, 선물의 규모와 액수에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더욱이 사랑 고백에 남성, 여성을 따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발렌타인데이’때, 아내에게서 초콜릿 선물을 받고 그 맛에 취해 정작 아내의 정성과 사랑을 잊고 있었는데, ‘화이트데이’인 오늘은 예쁘게 장식한 사탕 바구니는 아니더라도 커다란 ‘눈깔사탕’ 하나라도 사들고 집에 들어가 아내와 함께 밤새도록 그 ‘달콤한’ 사랑의 향기를 맛보아야 하겠다. 이것이 바로 ‘화이트데이’의 참뜻이 아니겠는가.
1956년 춘천 출생 / 춘천고, 강원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및 상지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 1992년 제5회 <시와 시학> 신인문학상 당선 / 1998년 제1회 <열린 시조> 신인문학상 당선 / <북원문학상> 및 <원주예술상> 수상 / <시와 시학> 동인, <오늘의 시조학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 시집 : <이웃은 차라리 없는 게 좋았다>, <사랑, 내 그리운 최후> / 저서 : <한국현대시 400선 - 이해와 감상> 1·2 /현재 원주여자고등학교 교사 및 상지영서대 언어예술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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