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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추억
2002년 02월 14일 (목)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조각가 박 광 필
■원주출생(1956년생)
■대성고, 청주교육대학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
■원주 「지금, 여기서부터」전 출품및
운영위원
■속초 강원국제관광엑스포
야외조각전 출품및 운영위원
■치악예술관 개관 초대전
■강원 감영 500년 기념 조형물 제작
■민긍호 의병장 기념상, 지용주 선수
기념상 제작


엊그제가 민족 최대의 명절 중의 하나인 설날이었다.
그러나 봄이 왔는데 봄 같지 않다는 한시처럼 설날이 설날 같지 않고 어딘지 서글프고 삭막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어린이들이 맞이하는 “설날”의 느낌은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유년의 기억으로 남아 개개인의 성장사에 어떻게 자리 매김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설날을 보내며 어린이들을 떠올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명절이 어린이들의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옛날의 명절을 맞는 어른들의 느낌은 내 유년의 기억으로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에서 연유하는 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어린이들에게 설날은 참으로 기다려지는 날임에는 틀림없었다.
아마 생일날을 기다리는 것보다 몇 곱절 더 기다리는 날이 설날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일은 혼자만 경축일이지만 설날은 온 동네의 잔칫날인 까닭에서 그러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끼니를 거르는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설날을 준비하기 위해 술을 빚고, 가마솥에는 조청과 엿을 고고, 안마당에서는 소당(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적과 전을 부치며 음식 장만이 요란했으며, 아버지와 형들이 모여 떡메를 철석이며 찰밥이 인절미로 변화하는 과정을 신기하게 지켜보던 일들, 금방 방앗간에서 뽑아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그 당시 우리는 이 떡을 기계로 뽑는다고 기계떡으로 불렀다.)을 한 입 물고 이웃집으로 떡을 돌리던 추억들….


이렇게 설 준비는 요란했으며 축제를 기다리는 설레임으로 아이들은 마냥 즐거울 수 밖에 없었고 저녁때가 되면 사랑채에선 오랜만에 가까우나 멀리 사는 친척들이 모여들어 할아버지와 두런두런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시고,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 이른 새벽에 찬물로 세수를 하고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기다리고 기다리던 설빔을 차려입고 지내던 차례 (제사보다 차례가 좋았던 점은 축을 읽지 않아 빨리 끝난다는 것이었다)이어서 차례상을 물리고 드리는 세배와 세뱃돈, 이른 아침을 먹고 성묘를 다녀와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한집 한집 동네 어른들께 세배 다니기, 가는 집마다 내 놓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가래떡과 조청, 감주(식혜)나 수정과를 곁들인 다과상(동네 꼬맹이들도 분명히 정중한 손님 대접을 받았다) 또래 동무들과 어울려 설빔을 자랑하고 재잘거리며 세배를 하며 온 동네를 돌고 나면 하루해는 그렇게 짧을 수가 없었고, 저녁이 되면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형 누나들은 그네들끼리, 우리는 우리들끼리 적당한 한 집에 모여 윷놀이를 하던 기억들, 가끔씩은 어른들 흉내를 내며 화투를 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출출해지면 화롯불에 떡을 구워 먹거나, 갖은 반찬을 넣어 비빈 밤참을 먹었던 기억들.
어린아이들이 이런 설날을 어찌 아니 기다리겠으며, 이 얼마나 화려한 명절의 하루였던가? 어떤 이는 설날 같은 명절이 가지는 의미를 먹을 것이 부족했던 절대 빈곤의 시절에 일회적인 풍요라고 가치평가를 절하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에는 집안내의 화목, 이웃간의 살가운 정, 더불어 어울려 사는 상호존중의 가치체계, 자연스러운 장유유서의 예를 갖추는 건강한 질서등 공동체적인 공감대가 살아 숨쉬는, 정신과 문화가 곳곳에 스며있는 우리의 고유한 세시 풍속이 아니었던가!


서구문물의 유입 속에 물질의 풍요는 가져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명절의 미풍양속은 사라지게 된 지금, 우리 어른들은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들에게 어떤 추억을 심어주고 있으며, 무엇을 소중하고 가치 있게 바라보게 해 줄 수 있는지 이 설날을 보내며 우울하게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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