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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추석에 화투를 한 까닭
2001년 10월 18일 (목)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양승준
(시인·원주농업고등학교 교사)
■1956년 춘천 출생
■춘천고, 강원대 국어교육학과및
상지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2년 제5회 <시와 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시단 데뷔
■1998년 제1회 <열린 시조> 신인상
당선으로 시조단 데뷔
■<북원문학상>및 <치악예술상>수상
■<시와 시학>동인, <오늘의 시조학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이웃은 차라리 없는 게 좋았다
>, <사랑, 내 그리운 최후>

또다시 가을이다. 세월 가는 것조차 모르게 온몸을 던져 살고 싶은데, 자꾸만 세월 가는 것을 의식하게 되니 이러다 세월 속에 갇혀 버리지나 않을까 모르겠다.
세월을 의식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 자신이 나이 먹었음을 뜻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어찌 이 나이에 세월을 말할 수 있으랴. 그렇지만 감히 세월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만 세월의 빠름 때문만이 아니라 이렇게 빠른 세월에 비해 우리네 세상살이는 조금도 발전하지 않는다는 데 그 슬픔이 있다.
하기야 우리네 세상살이가 어느 한때라도 편안한 적이 있었던가.
세상 속으로 뛰어들지도 못하고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곁눈질이나 하며 가슴 졸이고 사는 필자 같은 소시민들이야 그저 등 따시고 배 부르기만 하다면 무엇이 부족하고 누가 부럽겠는가.
‘새로운 천년’이니 ‘뉴밀레니엄’이니 하며 전세계가 떠들썩했을 때, 필자는 우리 지역의 새천년맞이 축제에 초대를 받아 축시를 낭송하며 새천년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사는 도솔천(兜率天)이 도래해 줄 것을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네 세상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가 소망했던 인간 낙원이 이루어졌는가. 낙원이 아니라면 두 다리 쭉 뻗고 누워 잘 만큼은 되었는가.
아득한 옛날, 중국에서는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안락했던지 함포고 복하며 격양가를 불렀다는데, 새로운 천년의 시작인 지금 우리네 삶은 어떠한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와 점점 더 이전투구로 변해 가는 정치, 게다가 정·관계 유력 인사들이 연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조폭들까지 가세하여 국기(國基)를 뒤흔드는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나 ‘보물선 인양 사업 커넥션’등 도통 알아들을 수도 없는 이름의 숱한 부정부패로 인해 이번 가을은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이렇게 스산한 가을날, 우리는 또 추석을 맞이하였고 연례 행사인 듯 필사의 귀성전쟁을 치러 고향에서의 행복한 몇 날 밤을 보낸 다음 또 한번 귀경전쟁을 치러 일상으로 돌아왔다. 몇 날 밤을 그리운 가족들과 함께 하며, 우리는 그 몇 날 밤만이라도 세상일을 잊어버렸으면 싶었다. 어머니 품 속 같은 고향으로까지 그 추잡한 세상을 등에 짊어지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추석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요, 그리운 얼굴들을 슬프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저급한 패러디 일색인 TV 추석 특집 프로그램을 밤새 시청할 것도, 추잡한 세상일을 핏발 선 눈으로 밤새 토론할 것도 아니라면, 오히려 정겨운 살붙이들과 함께 하는 화투놀이야말로 - 다수 손익이 있더라도 -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뉴스에서는 올 추석도 여전히 화투판으로 얼룩졌다며 우리의 건전한 놀이문화 부재를 비난하고 있으니, 대체 건전한 놀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민초들의 멍든 가슴을 어루만져
주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더욱 슬프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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