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원주투데이포털 | 6.4지방선거 맛집캘린더
 
  최종편집 : 2015.6.1 월
   
> 뉴스 > 읍면동 | 차한잔의사색
     
옻나무, 그 불멸의 빛
2001년 08월 06일 (월)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며칠 전 흥업면 대안리 골짜기로 나무를 보러갔다. 내가 나무를 보러갔다고 하면, 무슨 수백년 묵은 굉장한 나무를 보러 갔겠거니 오해할 분들이 계시겠다.

무척 오래된 느티나무가 대안리에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날 내가 보러간 나무는 그런 대단한 연륜을 지닌 나무하고는 거리가 멀다.


옻나무! 나는 겨우 팔 년 생 짜리 옻나무를 보러갔다. 폐교가 된 대안초등학교에서 저수지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낮은 산비탈에 무리 지어 키운 옻나무밭이 나온다.

칠기공예가인 소하 양유전 선생의 친절한 안내로, 외지에서 온 시인 한 분과 옻나무 구경을 갔다. 마침 옻나무밭에는 그 밭을 관리하는 분이 땀을 뻘뻘 흘리며 옻진을 채취하고 있었다. 반가웠다.


나는 더러 옻나무 밭에는 가보았지만, 옻진을 채취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몇 차례 옻진을 채취한 듯 어른 팔뚝 굵기의 옻나무마다 나선형의 칼집들이 시커멓게 나 있었다.
그 상처에는 옻진이 말라붙어 타이어 바퀴가 지나간 자국처럼 보였다. 옻진을 채취하는 이는, 상처가 난 아랫부분에 다시 예리한 도구로 칼집을 내고 유백색의 옻진을 긁어서 통에 담는 작업을 반복해서 했다.

“얼마나 아프고 쓰릴꼬! 너무 가슴이 아파요!”


함께 간 시인은 새로 난 상처에서 흐르는 옻진을 보며 가슴이 아리다고 했다. 나무를 감각이 없는 한 객체로만 보면 그렇게 가슴 아파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식물도 아픔과 사랑을 느끼는 감각이며 감정조차 지니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살아 있는 만물과 교감할 줄 아는 시인이라면 온몸을 난도질당하는 옻나무를 보고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리라.


곁에서 옻진 내는 광경을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소하 선생은 뜻밖에도 이렇게 대꾸했다.
“저는 옻진 내는 걸 자주 보지만, 저 역시 가슴이 아파요. 상처에서 흐르는 옻진을 보면 고름이란 생각이 들죠. 하늘 고름 말이에요!”

그래, 그렇다. 저 옻나무가 제 몸의 상처에서 흘려내는 고름이야말로, 하늘이 인간에게 선사해 주는 고름이 아닐 수 없다. 소하 선생의 말을 듣고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릇 불멸의 빛깔, 불멸의 삶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옻나무처럼 온전히 자기 몸을 내어주는 사심 없는 헌신(獻身)에서 비로소 얻어질 수 있으리라.”


옻나무 밭 관리인은 옻진을 내는 고단한 과정과, 옻진을 쏟아낸 뒤의 옻나무의 운명에 대해서도 소상히 이야기해 주었다. 6월부터 옻진을 내기 시작하면 9월 중순쯤 끝난다고 한다.

옻진 내기가 끝날 때쯤이면 옻나무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다. 9월 초쯤에 이르면 옻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일찍 누렇게 단풍이 들어버린다. 나뭇잎이 그렇게 일찍 저버리면 옻나무는 베어진다.


함께 간 시인은 옻나무 밭을 떠나면서, 옻나무 앞에서는 상처 운운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옻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찢긴 상처로 거친 인간의 성정을 순화시켰다. 옻나무는 제 몸의 상처에서 흐르는 체액으로 불멸의 빛깔을 얻기 전에도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깊은 내상(內傷)을 치유해 주고 있었다.

어찌 옻나무 뿐이랴만, 나는 새삼 옻나무에게서 ‘사랑의 신비’를 엿
본 기분이었다.





시인 고 진 하

■강원도 영월 출생

■「세계의 문학」 시인으로 데뷔

■시집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등

■명상에세이 「영혼을 살아 있게
하는 50가지 방법」

■김달진 문학상 수상

■현재 기독교문화포럼 대표


원주투데이의 다른기사 보기  
ⓒ 원주투데이(http://news1042.ndsoft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기획특집: 시민의 발 시내버스, 인구
사건사고 브리핑
귀래 사랑의집 48년 악연 끊었다
4월 원주지역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
제16회 장미축제…축하공연·체험행사
행구동 아파트 거래현황…현대아파트 3
제11회 청소년축제 성황
원주천에서 수달 서식 목격
(주)인성메디칼 원주 이전 지역주민
원주문화재단,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강원도 원주시 서원대로 158 5층(단계동)  |  대표이사 오원집  |  Tel : 033)744-7114 / Fax : 033)747-9914
발행인: 심형규  |  편집인: 오원집  |  등록년월일: 2012년 4월 9일  |  등록번호: 강원 아 00125  |  사업자등록번호: 224-81-11892
Copyright 2009 원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jtoday1@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