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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실언(醉中失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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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설가 이문열과 국회의원 추미애와의 논쟁이 화제가 되어 있다. 이 논쟁은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 이문열이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 대해 추의원이 ‘곡학아세’라고 비판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문열이 진리에 어그러진 학문으로 세상에 아첨했는지 필자로서는 판단할 수 없지만, 추의원은 다음날 한 술집에서 온갖 욕설을 동원해 또다시 이문열과 야당을 비판함으로써 이번엔 ‘취중 욕설’이 화제가 되었다.
국회의원이라는 공인으로서 그것도 집권여당의 잘 나간다는 여성의원으로서 조직폭력배도 입에 담기 힘든 육두문자까지 사용했다는 것을 보면 분명 취중 실언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너무 지나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처럼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데 술의 묘미가 있다. 근엄한 신사와 정숙한 숙녀로 시작된 술자리가 술병이 쌓여가고 분위기가 익어가면, 신사와 숙녀는 사라지고 가수와 무용수만 남아 질펀한 춤과 노래의 향연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지나치면 투사가 되기까지 한다.
술 취했을 때 나타나는 ‘진면목’이라는 것도 평소 모습의 연장선에서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이런 뜻밖의 즐거움 때문에 사람들은 오늘도 술자리를 찾아 밤거리를 헤매는 것이 아닐까.
술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라 할 만큼 술은 우리와 함께 해왔다. 중동 메소포타미아의 한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발굴된 기원전 7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석판에 맥주를 만드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었다는 걸 보면 술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 있다.
중국에서도 기원전 3000년경인 은나라 때부터 ‘주(酒)’라는 글자가 등장한다 하며, 우리 나라에서도 술은 고조선 시대부터 일상생활과 깊이 관련을 맺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 민족을 ‘음주가무’에 능한 민족이라 소개한 중국의 옛 문헌을 참고해 본다면, 신사·숙녀가 왜 가수·무용수가 되는지, 그리고 술집과 노래방들이 왜 그리 번성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술에는 주도(酒道)가 따르는 법이라 한다.
우리의 전통 주도의 요체는 예의를 갖추는 것이며, 반드시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인간 관계를 중시하며 적대적이 아니라 화목하는 것에 있다 한다.
전통 주도는 세종대왕께서 음주에 관한 예를 가르친 <향음주례>에서 그 정수를 찾을 수 있는데,
첫째는 의복을 단정하게 입고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말 것,
둘째는 음식을 정결하게 요리하고 그릇을 깨끗이 할 것,
셋째는 행동이 분명하며 활발하게 걷고 의젓하게 서고 분명히 말하고 조용한 절도가 있을 것,
넷째는 존경하거나 사양하거나 감사할 때마다 즉시 행동으로 표현하여 절을 하거나 말을 할 것 등이라 한다.
이외에도 전통 주도에서는 술을 탐하여 취하도록 마셔 예의와 품위와 건강을 잃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술을 마시는 일이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우스개 말로 주도에는 ‘부주’·’외주’에서부터 ‘기주’·’탐주’를 지나 ‘관주’·’열반주’라는 술의 진미를 체득한 경지까지 무릇 18계단이 있다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그 험난한 18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서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비록 최고의 경지는 아니더라도 술의 진경을 배운다는 ‘학주’ 정도야 되지 않겠는가.
허나 어느 경지까지 올라서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행여 필자의 실언이 누군가의 가슴을 찌르고 결국에는 내 모가지를 베어버린다면 어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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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준
(시인·원주농업고등학교 교사)
■1956년 춘천 출생
■춘천고, 강원대 국어교육학과및
상지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2년 제5회 <시와 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시단 데뷔
■1998년 제1회 <열린 시조> 신인상
당선으로 시조단 데뷔
■<북원문학상>및 <치악예술상>수상
■<시와 시학>동인, <오늘의 시조학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이웃은 차라리 없는 게 좋았다
>, <사랑, 내 그리운 최후>
■저서:<한국 현대시 400선 - 이해와
감상>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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