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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뒤에 홀로 남은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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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2일 새벽4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의 상황을 생각하니 또 가슴이 메인다.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에는 이승에 홀로 남아 계신 어머니를 찾아 봉평엘 갔다. 어머니는 집에 안 계셨다. 마을 경로당에 가신다는 말을 들었기에 그곳으로 찾아갔다.
경로당의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렸으나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아버지 살아생전에 함께 지내시던 할아버지들이 방을 가득 메우고 계셨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거기 어느 곳에서도 없었다.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아버지’라는 이름도 거기 없었다.
뭉클한 가슴을 억누르며 “할머니들은 어디 계시나요?”라고 겨우 물어 보고는 얼른 그 자리를 비껴 나왔다.
어머니가 있는 곳을 찾아 갔다. 많은 노인네들이 왕-왕 대는 마이크 소리를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고 계셨다. 빙빙 돌아가는 원(圓)속에서 내 어머니는 나를 또 한번 목이 메이게 했다.
왜 그런 옷을 입으셨는지 그날 따라 옷도 제일 초라하게 보였다. 게다가 가슴엔 꽃 한송이도 안 달고 계셨다. 또 게다가 그 많은 노인들 중에서 내 어머니 체구가 제일 깡 말라 있었다.
물론 오랜 세월 동안 당뇨병으로 고생하셔서 그런 줄은 알지만 어머니 몸은 거미 같았다.
몸과 살을 몽땅 자식들에게, 생활에게, 세월에게 뽑아주신 거미의 모습! 언젠가 썼던 시(詩)처럼 어머니의 모습은 <빈 집, 혹은 빈 껍데기> 그 모습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그래도 춤을 추시겠다고 몸을 설렁설렁 흔들고 계셨다. 그건 춤이 아니라 바람소리였다.
그저 무감각으로 움직이는 한(恨) 풀이었다. 내 눈엔 그렇게 비쳐왔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뒤에서 한참을 바라보던 나는 급기야 눈물을 주루루 흘리고 말았다.
왜 그 많은 노인네 중에서 내 어머니가 제일 불쌍해 보였을까?
또 그 많은 자식들은 어디 가서 무얼하고 있길래 그 시간까지 꽃 한송이도 안 달고 계셨을까?
묻고 싶지도 않다. 어느 신문(중앙일보)에 보도된 대로 요즈음 어버이날의 세태에 대하여 일침을 가한 적이 있다.
“못 가 뵈어서 죄송해요, 어떻게 하지요? 무슨 무슨 일이 있어서 그래요”라는 말로 자식들이 전화를 하면 “바쁜데 뭐, 올 것 없다. 너희들이나 잘 지내라.”고 말로만 때우는 것이 요즘 어버이날의 풍속도라고 하니,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아무튼 내 어머니는 거기 그렇게 홀로 계셨다.
혼도 살도 다 소진한 거미의 모습으로…
일년 중 의미있는 행사가 제일 많은 5월이 간다. 어버이날도 가고, 어린이날도 가고, 스승의 날도 가고, 가정의 달도 간다. 다 가고 나면 내 어머니 몸같이 빈 껍데기, 빈 계절, 빈 몸 같은 행사의 이름만 또 남아 있겠지?
꽉 찬 속 알맹이, 그 이름으로 이 푸르른 행사의 달, 5월이 남는다면 굳이 연례행사 치레는 치르지 않아도 좋으리라.
시인 이 영 춘
(원주여자고등학교 교장)
■강원도 평창군 봉평 출생
■원주여고 졸업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6년 제19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
■제3회 윤동주 문학상
■제29회 강원도 문화상(1987)
■춘천 시민상(1999)
■제10회 경희 문학상(1993)수상
■시집 《종점에서》, 《네 살던날의 흔적》,
《점하나로 남기고 싶다》, 《그대에
게로 가는 편지》, 《난 자꾸 눈물이
난다》, 《슬픈 도시락》
■수필집 《그래도 사랑이여》 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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