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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소녀영자와 광고
2001년 02월 26일 (월)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산골 소녀 영자가 겪은 일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니, 이런 표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욕지기가 난다. 영자가 핸드폰 광고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 때문에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더라면, 그 때문에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되어 험한 세상에 맨몸뚱이로 던져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영자의 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세상과 사람에 대한 근원적인 절망감이다.
핸드폰 광고에 출연해서 받은 개런티까지 다 빼앗겼다니, 그리고 그 잘난 돈 때문에 아버지까지 피살되었을지도 모른다니, 대체 이 순박한 소녀에게 세상과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나는 영자와 영자의 아버지가 왜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살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그런 삶을 택했다면,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부로 사람들 앞으로 끌어낼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핸드폰을 더 팔기 위해서 그곳에까지 카메라를 들이민 사람들의 욕심이 이런 화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 부녀를 일회용 구경거리로 끌어내어 놓고, 결국은 그들의 삶을 파괴해 버리고 말았다.
애초에 그 광고를 보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광고 제작자는 무슨 권리로 광고라는 가짜 존재의 장에 저 순결한 사람들을 끌어넣는 것일까?


얼마전엔가 지리산에 숨어살고 있는 기인의 행적을 악착같이 쫓는 프로그램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거의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카메라가 자신의 모습을 담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그러나 카메라는 뻔뻔스럽게 그의 일상을 시시콜콜 들추어냈다.


그의 이상한 먹거리, 비참한 잠자리, 누덕누덕 떨어진 옷가지까지.
이것은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문제이다.
그 기인이 어떤 삶을 선택했든, 그것은 그의 선택이다.
그가 취재 대상이 되기를 거절했다면, 아무리 취재 의욕이 앞섰더라도 포기했어야 옳다. 그런데도 기자는 악착같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대체 그 프로그램이 시청자의 천박한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 것 외에 어떤 공익적 역할을 한다는 말인가?
어떤 사람이 짐승처럼 살건, 괴물처럼 살건, 세속을 떠나기로 작정했다면, 그리고 그 삶의 태도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면, 내버려두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카메라는 마치 원숭이를 들여다보듯이 까발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그의 삶을 까발리고 있었다.

기자는 맹목적으로 리얼리티만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가짜이며 시뮐라크르인 이 시대에 어디에 가서 이보다 더 쇼킹한 리얼리티를 잡아낼 것인가.


영자는 스스로 원해서 TV 광고에 출연했으니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영자의 경우도 이와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절대적 빈곤 상태에 놓여 있었을 영자 부녀에게 광고사가 제시한 돈은 물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자 아버지는, 자신은 원해서 그런 삶을 선택했지만, 딸에게까지 그 삶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광고 기획자 역시 앞서의 기자처럼 맹목적인 리얼리티를 욕심내었던 것이다. 만일 그 CF가 산골의 풍경을 연출해서 이미지를 잡아내었다면, 이 모든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 연출된 리얼리티라고 해도 그것은 늘 진짜 리얼리티에 비해 턱없이 열등하다. 진짜 리얼리티의 순결성은 조작된 리얼리티를 대번에 압도한다.
문제는 기획자가 가짜의 메시지를 진짜로 포장하기 위해서 진짜 산골의 이미지를 원했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가짜 메시지의 진실지수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광고 전략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진짜가 가짜를 개선시키기는커녕, 가짜에게 집어삼켜져 버린 것이다. 진짜 영자는 가짜의 삶속에 침몰해 버렸다.


물론 광고 기획자에게 이 모든 사태를 책임지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광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이제는 윤리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광고는 너무 많은 것을 원하고 있다.
그것은 애초의 순진한 전략에서 자꾸 멀어지고 있다. 광고는 존재를 무너뜨리기 시작하고 있다. 영자는 이제 누구일까? 그녀는 누구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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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 정 란

■1953년 서울 출생

■성심여자중·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졸업

■프랑스 그르노블 III 대학원 졸
업(문학박사·전공: 프랑스 현
대시)

■현재 원주 상지대 인문사회대
부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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