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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괭이와의 화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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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줄무늬의 도둑괭이와 어둑한 지하실에서 맞닥뜨린 게 벌써 두 번째다.
어찌나 혼비백산했던지 나는 지하실 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휘청 굴러 떨어질 뻔했다. 저녁밥을 먹고 글을 쓰려고 내려가던 참이었다.
한데 놀란 건 괭이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워낙 차가운 날씨인지라 바깥보다 따뜻한 지하실 구석에서 몸을 녹이거나 잠을 자러 왔던 모양인데, 갑자기 내가 문을 열고 내려가니, 놈은 계단에 엉거주춤 서 있는 내 다리 사이로 순식간에 빠져 달아났다.
괭이가 빠져나간 뒤 알전등을 켜고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는데 여전히 가슴이 콩닥거렸다.
망할 놈의 괭이녀석 같으니라구! 고렇게 감싸고 애지중지하니 이젠 내 방까지 넘보잖아? 나도 몰래 저절로 욕지거리가 쏟아졌다.
사실이 그랬다.
아내는 지난해 늦가을부터 옆집 담장을 도둑처럼 넘어 들어와 뜨락 밑에 버리려고 놓아둔 쓰레기 봉투 속의 밥찌꺼기며 생선뼈 따위를 헤집어 놓곤 하는 도둑괭이를 제 자식새끼처럼 끔찍히도 위했다.
영하 십도 이하로 떨어지는 혹한이 계속되자 아내는 아예 날씨도 추운데 괭이 녀석 굶어죽게 생겼다며 음식쓰레기 담은 봉투를 밤이면 일부러 삐쭉 벌려 두곤 했다.
“무슨 도둑괭이 새끼를 제 자식보다 더 위하는 거요?”
어느 날 지하실 서재에서 책을 읽다가 뱃속이 출출해져서 밥 한 술 먹으러 올라가는데, 음식쓰레기가 문 앞에 지천으로 흩어졌길래 이때다 싶어 아내에게 투덜거렸다.
“여보, 날씨도 추운데 괭이 녀석 얼마나 불쌍해요?
기왕 버리려고 내놓은 음식찌꺼긴데 괭이가 먹으면 쓰레기 줄어서 좋고 춥고 배고파 얼어죽을지도 모를 괭이 살려서 좋고…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녜요?”
“그래, 그래, 당신은 천국은 따 놓은 당상이구먼! 예수님이 이끌어주시지 않아도 괭이 조상들이 당신을 어여삐 보아 천국에 좋은 보금자릴 틀어 줄 테니까 말이여!”
나는 아내의 애교 섞인 항변에 할 말이 없어 이렇게 우스개를 떨고 넘어갔지만, 사실 나는 아내와 달리 이상하게도 괭이를 싫어하는 편이다.
아무튼 그 이후로도 아내의 괭이 사랑은 극진하여 고 녀석이 저 먹으라고 벌려 놓은 쓰레기 봉투까지 물고 뜯어 집 뜨락을 난장판처럼 만들어 놓아도 아내는 군말 없이 빗자루와 부엌 삽을 들고나섰다.
하늘이 허락한 맑은 천성 때문이겠지만, 하루에 몇 차례씩 빗자루를 드는 일이 천성만으로 어디 가능한 일이겠는가. 고 하찮다면 하찮은 생명에 대한 지순한 애정이 없다면 그 궂은 치다꺼리를 자청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나도 도둑괭이를 좀 살갑게 대해 줄려고 애써 보지만, 고 괭이녀석은 나만 보면 담을 넘어 오다가도 무슨 웬수를 만난 듯 슬금슬금 줄행랑을 놓고 만다.
사람 가까이 사는 영물이니 내가 저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줄 본능적으로 알고 있겠지.
물론 어두운 지하실에서 맞닥뜨린 두어 번의 악연도 녀석의 뇌리에 아직 남아 있을 테고.
요즘도 가끔씩 지하실을 오르내리다가 나만 보면 줄행랑을 놓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괭이의 마음을 살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곤 한다.
모든 만물 속에 신의 지문(指紋)이 새겨져 있다고 말로는 그럴 듯하게 떠벌리면서 한솥밥을 나눠먹는 식구와 화해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냐는 뉘우침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별걸 다 뉘우친다고 웃으실런지 모르지만, 괭이 한 마리에 대한 연민이 어찌 사람에 대해 갖는 연민과 뭐 다를 게 있겠는가.
괭이보다 더 하잘 것 없는 미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지극한 돌봄과 관심이 무언가 세상에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겠는가.
시인 고 진 하
■강원도 영월 출생
■「세계의 문학」 시인으로 데뷔
■시집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등
■명상에세이 「영혼을 살아 있게
하는 50가지 방법」
■김달진 문학상 수상
■현재 기독교문화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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