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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급식조례 제정될 수 있도록
2005년 11월 14일 (월) . .
가붕현 (지역협동사회연구원 운영실장)

일만 천여 명의 원주시민들이 불안함을 무릅쓰고 주민등록번호 적고 지장 찍어가며 직접 청구한 급식조례안의 내용은 그 딱딱한 조례 이름과는 다르게 매우 단순하다. 우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농산물 및 우리 농산물을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제공해주자는 내용이다. 아이들 먹거리의 안전성을 높이는 것 뿐만 아니라 지역 농업과 농민의 생존권을 위해 다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취지에서 청구된 조례안이다. 물론 그에 따라 늘어나는 추가비용을 원주시에서 부담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원주시 조례규칙심의회는 지난 9월 9일 대법원의 전라북도급식조례 무효판결을 이유로 원주시 학교 급식 식재료 사용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에 표현된 ‘우리’, ‘우리지역’, ‘국내산’이라는 어휘를 문제 삼아 국적불명의 ‘우수’라는 표현으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전라북도급식조례 무효판결 후 얼마 되지 않은 9월 30일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대법원에 제소된 경상남도급식조례에 대해서는 최종판결 연기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며칠 뒤에는 서울시급식조례에 대해서도 최종판결 연기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는 대법원이 보다 신중하게 검토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판결을 내렸다는 의미이다.
그 ‘결여된 신중함’에 대한 예를 보자. 미국은 미국 정부가 아닌 그 누구도 WTO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만으로 미국 법원에 제소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우리나라 기업에게 WTO 협정에 위배된다며 부당한 행위를 해도 우리나라 기업은 WTO 협정 위반을 근거로 미국을 제소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EU)은 1994년 WTO에 가입하면서 WTO협정은 그 본질상 유럽연합이나 회원국의 사법부가 직접 원용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1990년 가트위반에 대한 구제조치는 GATT 제23조에 규정한 분쟁해결절차에 따라야 하고, 위반이 있으면 일본은 기타 가입국으로부터 위반을 추궁 받게 되기 때문에, GATT 위반을 이유로 당시 문제가 된 일본의 견사가격안정법이 국내법으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결한 하급심 판례들을 긍정했다. 중국의 판사들도 WTO 협정 위반을 이유로 중국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위에 열거한 다른 나라들처럼 자체에 아무런 입법적 장치도 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대법원이 WTO 협정의 직접효력을 명시적으로 인정해버렸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나라 정부가 WTO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나라 또는 다른 나라 기업들로부터 한국 법원에 제소당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도움말 : 송기호 변호사)
다른 나라들에서는 타국의 간섭을 배제하는 법안을 준비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전라북도급식조례에 대한 대법원의 무효판결에서 보듯이 타국 간섭을 법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더군다나 WTO 설립협정 제 9.2조는 ‘각료회의와 일반 이사회는 이 협정과 다자간 무역협정의 해석을 채택하는 독점적 권한을 갖는다’라고 규정함으로써 WTO 협정의 해석 권한을 WTO 기구에게만 부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주시 조례규칙심의회가 계속 WTO협정에 위배된다며 주민발의로 청구된 급식조례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다자간 무역협정의 해석을 채택하는 독점적 권한을 갖는 WTO 기구의 권한을 월권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주민발의의 원주시 학교급식조례안의 원칙과 취지는 충분히 인정될 수 있고, 법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하더라도 그때 가서 원주시 발의로 하든 원주시의회 발의로 하든 개정을 하면 된다. 얼마 전 원주시가 행정소송을 당할 수 있는 부담도 마다하지 않고 보여주었던 단계동 화상경마장 설치 반대의 의지를 안전한 우리 지역 친환경농산물을 아이들에게 제공해주자는 급식조례 제정 과정에서도 발휘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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