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지 백년 넘은 황토 흙집 결혼 앞둔 아들이 벽지를 바르다 울퉁불퉁 벽면이 고르지 않자 블록을 붙 고 했다 몇 십 년을 흙벽과 마주앉아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을 제 몸 통해 보내주니 고마웠고한 겨울이면

동해의 빛난 해를 건져 올린다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도 한다 수천 년 변하지 않는 씩씩한 산의 기상 그 넓은 품속에 나를 던지며 정겹게 안아주는 푸른 손길이여 어느새 내 몸 안에도 신록이 돋아난다

지팡이에 기댄 채 백발의 할머니 삐그덕 틈새로 바람이 이어주는 신천지 바라보니 세월 저쪽엔 탐스럽게 청포도 익어 간다

아버지의 전성시대 일본 오사카를 해매이던 아버지,현해탄 파도를 타고 조선 땅에 도착하던 날 어머니는 오빠를 품에 안고 낮잠이 들었다. 순간 잿간에서 불이나 삽시간에 번져 주저앉기 직전 아버진, 어린 오빠를 마당으로 던지고

엉겅퀴 꽃은 보랏빛 그림붓 간밤에 달빛과 별빛을 묻혀 그림을 그렸나 봐 그 붓 끝에

푸른 산자락마다 산새가 곱습니다. 세월의 계단만큼이나그리움의 무게만큼이나 당신의 눈빛이 머문 긴 여운

눈에 보이는 건 붉은 꽃잎이지만 마음을 살살 문대는 건 사랑이어라 내 어머니가 일생을 부어 준 사랑의 언어들이 흰나비 풀풀 무꽃 위로 흔들리는 봄날

돌다리 건넜더니 돌나물 반기겄다별자리 수를 놓듯 모두가 반짝이니 오동통 살찐 모습도 눈에 뵈지 않더라

갓 지은 밥을 푸고 노릇노릇 누룽지를 굽고 그래도 남은 것은 박박 긁어 숭늉까지 끓이고 나니 거룩하도록 깨끗해진 솥바닥

빈 터에서 용솟음치는 힘은 빗장 없는 문을 열려함이다 토양의 품격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발소리의 키를 재지도 않으니 온전한 생산의 계절 탄생의 벅차오름을

높은 나무에 까치가 집을 짓고 하늘로 문 내 놓고 "해님 달님 놀러 오세요." "구름도 바람도 놀다 가요."

부활절 아침에 감자를 심다 쪼글쪼글한 몰골에 눈은 여러 개, 세상에 나고 싶었던 눈구멍들은 한 줌 흙한줌에 파묻히고어둠에 숨어 있는 것들도 부활을 꿈꾸나?호미에 거치적거리는고랑에 던져진 작은 눈들,그들이 꿈꾸는 아침은 감자밭 둑에 쌓인다골고다 언덕 위

복사꽃 네가 아름다운 건 꽃잎 뒤에 숨어 있는 초록 잎새 때문인 것을

누가 집터를 주었을까 누가 대들보를 주었을까 그녀는 비탈진 산기슭 언덕에 집 한 채를 지었다 불어오는 훈풍도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재식엄마 전화 받고 갔더니산수유 꽃이 와 있고 명자 꽃이 와 있고팔 다리에 검버섯 핀 벚나무도꽃을 다발로 들고 와 있고진달래꽃도 와 있다부지런도 해라

다시는 소꿉질할 일이 없다는 듯 손때 묻은 살림살이 죄다 버려두고 어디로 갔을까? 아가는

아지랑이가 들에서 몰려오고 있다 삼층 높이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사는 까치가 새로운 손님을 보았다고 소란을 떨고 있다

무서리 맞고 죽은 듯 숨을 쉴 수도 없었던 절망의 순간 어떤 힘으로 일어났을까 그 일이 잘 되었더라면기고만장해서 오늘의 내가 아니었을 것이여

지도에도 버려진 쓸쓸한 계곡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널문리 마을 옛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판문점이라 불렀다　

해마다 느티나무 숲에 새로운 첫눈이 내리고 그 위에 다시 몇 번씩이나 함박눈이 쏟아진다 해도 이보다는 장쾌하지 않으리 나의 귀거래여 나를 데리고 오래도록 타관을 떠돌다뼈만 남은 슬픔이여이제 이곳에 너를 내려놓을지니부디 축복받으라 나 비록작은 이름조차